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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기

드라마로 풀어보는 세상이야기 - 사랑이 뭐길래

by 달천이 2021.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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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몬스터애플입니다. 

오늘부터 가끔 드라마를 통해 보는 세상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즐겨봤던 드라마에 얽힌 여러 이야기와 

그때 당시의 풍경과 모습들은 어땠는지

추억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쯤이라 생각하시면 될 듯 해요. 

 

저도 정리를 하면서 새삼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봤답니다. 

오늘의 드라마는, 

 

대발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사랑이 뭐길래> 입니다. 

 

사랑이 뭐길래는 

김수현작가님의 드라마로, 

대발이 아빠 이순재와 엄마 김혜자, 

그리고 대발이 최민수, 아내 지은의 하희라, 

그리고 윤여정, 신애라, 강부자, 여운계, 김세윤 등이 출연해서 초유의 히트를 친 드라마에요. 

 

당시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할 시간에는 

평균 수도사용량이 뚝 떨어졌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이 한산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정말 하늘을 치솟았나봐요. 

 

저도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온 가족이 티비 앞에 둘러앉아 울고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했던 때는 1991년 하반기부터 1992년 5월까지 총 55회에 걸쳐 방영되었어요. 

가부장적인 집안 대발이네와 너무도 민주적인 가정 지은네가 사돈을 맺으면서

벌어지는 양가집안의 이야기가 아주 코믹하게 그려진 드라마인데요. 

 

지금과 달리 당시의 주말드라마는 휴먼 홈드라마 형식이어서 

지금처럼 살인, 불륜 등의 막장요소가 좀 덜하긴 했어요. 

순한 드라마였다고나 할까요. ㅎㅎ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가 늘 소리를 지르며 김혜자님을 쥐잡듯이 잡고

집안의 전권을 휘두르며 막강권력을 뽐냈는데요. 

툭하면 대발아~ 대발아~를 불러서 

당시 유행이 이름 끝자에 발자를 붙여 충발이, 재발이, 지발이 방발이 등 

자기 이름 뒤에 ~발이라고 하는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인 집안 대발이네를 웃으며 볼 수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저런 집이 꽤나 있었죠. 

남녀가 하는 일이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말이죠. 

요즘 세상에 저러면...... 거의 쫓겨나는 각 아닙니까? ㅎㅎㅎ 

 

사랑이 뭐길래는 최초의 한류드라마이기도 했어요. 

국내에서 평균 시청률이 60%가 넘는 드라마이기도 했고, 

최고 시청률이 70%가 넘을 때도 있어서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드라마 시청률 1위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이런 국내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으로 수출되어 중국에서도 대발이 신드롬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김혜자가 신세한탄을 하면서 들었던 노래, 

아시나요? 

대발이 아버지에게 옴팡 깨지고 나면 

혼자 앉아서 노래를 듣곤 했는데, 

그 노래가 바로 

김국환의 타타타였습니다. 

 

당시 김국환씨는 10여개월 간 사람들의 관심밖이었다가 

드라마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당시의 기록으로는 어마무시하게 

50만장을 팔아제끼는 기록을 세웠다는데요. 

드라마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죠? 

 

또 이 드라마로,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와 강부자는 제14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친근한 이미지로 정치인으로 변신했었지만 

한번 하시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셨죠. 

 

하희라 역의 지은은 원래 최진실이 하려고 했었답니다. 

당시 인기가 높았던 최진실씨가 대발이 아내역을 하려고 했었는데,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하희라씨에게 넘어갔다죠. 

하희라씨는 이 드라마로 CF퀸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압축본으로 보여준 

MBC의 명작극장도 있었답니다. 

 

youtu.be/_GbF9911NaU


그렇다면 

사랑이 뭐길래가 한창 방영이 되던 

1991년의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요? 

 

1991년도에 최저임금은 과연 얼마였을까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최저임금은 1000원이 채 되지 않았네요. 925원!!

지금 만원으로 올리느냐 마느냐 하는데 하루 8시간 기준 7400원이었네요. 

오늘날의 한시간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준, 

 

1991년 6월 5일 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과장 월급이 90만원 정도, 10년 근속 생산직근로자가 120만원 정도 받는다고 

나와 있네요. 1991년 최저임금 월액수는 19만 2700원..... 작았네요. 

 

1980년도 기준 10년동안 근무하면서 월급이 4배 상승할동안

집값도 4배 정도 뛰었다는군요. 

 

30년이 지난 지금, 

현대 과장 월급을 1억 받는다치면 월 650만원정도... 

아파트 구입가격은? 

압구정 현대가 30억 정도 하니까......... 

흠........... 

아파트 값은 약 25배 뛰었네요. 

 

사실 집값 폭등은 80년대 후반에도 있었어요. 

집값은 수요와 공급, 금리에 영향을 받아요. 

1980년대 말, 서울 집값은 폭등하고 있었는데요. 

이때의 폭등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각종 인프라를 확충했지만 

정작 사람들이 살 주거공간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죠. 

 

이 집값의 폭등을 잡은 것이 바로 그 유명한 200만호 건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200만호 주택 건설 기치를 내걸며 공급정책을 편 것인데요. 

다들 알다시피

이때 분당, 일산, 평촌 등 유명한 신도시 1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대대적인 주택보급으로 1990년부터 1996년까지 거의 매년 10만호 이상씩 주택이 건설되었고, 

공급이 늘자,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었죠. 

 

**** 

1991년도에는 또한 걸프전이 벌어졌어요. 

사막의 폭풍이라 불리는 작전명으로 6주간, 미국의 최첨단 군사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죠.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듬해 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미국주도로 

영국, 프랑스 등 34개국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을 본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실감해 

이때부터 인민해방군 현대화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그렇다면 그 당시 사병들의 월급은 어느정도였을까요? 

최근 병사들에게 애국페이를 강요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건 아마도 최저임금의 30-40%로 책정되는 사병들의 월급수준 때문인 것 같습니다. 

 

1991년도 병장 월급은 만원이었다네요. 

상병은 9000원, 일병은 8000원, 이병은 7200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자장면 값이 한 그릇에 900원 정도였다고 하니, 

자장면 열그릇값이 사병 월급이었네요. 

 

2020년 현재 병장은 54만원, 

상병은 488,2000원, 일병은 44만원정도, 이병은 4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합니다. 

 

* 1991년도 자영업자의 비율은 37.3%였는데 

현재는 25.5%라고 합니다. 

여전히 OECD 평균보다는 높은 수치라고 하는군요. 

 

*** 

1991년 우리 가요를 강타한 노래는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랍니다 

 

한해동안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와 더불어 

1990년대 안타깝게 죽은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가 유작앨범으로 발표되며

많은 이들의 사랑 역시 받았습니다. 

 

티비연예면에서 보자면

이경규 아저씨의 <몰래카메라>가 히트를 치며 

많은 연예인들을 속이며 재미를 안겨주기도 했답니다. 

 

이밖에도 

지금도 유명한 광고카피도 있었는데요. 

 

<여보,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정말 그로부터 꽤 오랫동안 이 카피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광고가 처음 나온 것이 1991년이라고 하네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추억하다보니

그 시대의 사회상이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30년 전,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이상, 몬스터애플의 드라마 시시콜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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